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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실 상장 논란을 빚은 ‘파두 사태’ 이후 위축됐던 특례 상장이 회복 조짐을 보이고 있다. 한껏 강화됐던 거래소의 상장 심사가 소폭 완화될 기류가 감지되자 기업들이 재차 특례 상장을 노리는 모습인데 증시 밸류업(기업가치 제고) 기조를 고려할 때 기업공개(IPO) 문턱 자체가 크게 낮아지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23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최근 한국거래소에 상장 예비심사를 청구한 채비·세미파이브는 모두 ‘이익 미실현 특례(테슬라 요건)' 상장을 추진 중이다. 앞서 상장 예심을 통과해 이날 기관투자가 대상 수요예측을 마치는 아이티켐도 테슬라 상장 과정에 있다.
이익 미실현 특례 상장은 당장은 적자를 내지만 성장 잠재력이 높은 기업에 증시 입성 기회를 주는 제도다. 미국 전기차 기업 테슬라가 2010년 일반적인 상장 요건에 미달했어도 성장성을 담보로 나스닥 시장에 입성한 사례를 참고해 우리나라도 2017년 도입했다. 테슬라 상장을 추진하려면 시가총액이 500억 원, 매출이 30억 원 이상이면서 최근 2개 사업연도 평균 매출증가율이 20%를 웃돌아야 하는 등 거래소가 부여한 양적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이외에도 △경영·재무 안정성 △사업·산업 성장성 등을 따지는 질적 심사를 통과해야 IPO를 진행할 수 있는 자격을 얻는다.
테슬라 요건 등을 활용한 특례 상장은 최근까지 위축되는 추세였다. 올 상반기 상장 예심 청구를 한 기업(스팩·이전 상장 등 제외)은 40곳으로 지난해 상반기 79곳의 반토막 수준으로 줄었는데 테슬라 상장과 기술력 평가 중심의 기술특례상장 모두 얼어붙었다. 승인·미승인·철회 등 확정 결과가 나온 기업 21곳 중 8곳(38.1%)이 심사를 통과하지 못하며 높은 IPO 장벽을 실감해야 했다. 장기간 IPO를 준비해온 한 기술 스타트업 관계자는 “지금 같은 상황이면 흑자가 날 때까지 기다려 상장을 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말했다.
최근 분위기가 바뀐 것은 거래소의 심사 기류 변화 때문이다. 다수의 IB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거래소는 최근 상장 업무를 주관하는 다수 증권사에 특례 상장 심사 기준을 완화할 수 있다는 의사를 전했다. 특례 상장 추진 기업에 △산업 전망 △기술 사업화 가능성 △거래처의 양과 질 등을 중심으로 엄격히 적용했던 질적 심사 기준을 소폭 하향할 수 있다는 신호로 읽힌다. IB 업계 관계자는 “최근까지 특례 상장 기업은 거래소의 질적 심사를 통과하기가 확연히 어려워졌었다”며 “이로 인해 상장 시도가 과도하게 위축되자 거래소에서도 심사 폭을 넓히려 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다만 거래소 관계자는 “심사 기준 변화는 없다”고 말했다.
거래소와 금융 당국이 상장 기업의 수준을 높여 증시 밸류업을 이루려 하는 만큼 IPO 문턱이 마냥 낮아지기는 어렵다는 분석도 있다. 테슬라 상장을 추진하는 채비와 세미파이브는 각각 국내 전기차 인프라와 맞춤형 반도체(ASIC) 설계 분야에서 선두에 올라 있다. 아이티켐도 정밀화학 소재 사업에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것으로 평가된다. 한 증권사 IPO 본부장은 “최근 테슬라 상장을 시도하는 기업들은 모두 이미 시장에서 검증이 된 곳들"이라며 “테슬라 요건이든 기술특례 요건이든 심사 기준이 크게 낮아지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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