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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하는 상법 개정안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는 가운데 자수성가한 기업인이 정당한 부를 누리고 주주도 혜택을 입도록 상속·증여세를 낮추되 자본이득세와 결합하자는 대안이 부상하고 있다. 일부 대기업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창업 일가는 현금이 없는 ‘주식 부자’다. 게다가 창업 일가가 1세대에서 3세·4세로 넘어간 만큼 상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이들은 사실상 기업을 뺏길 상황에 처할 수 있다.
대주주가 기업가치를 향유하지 못하게 만든 징벌적 상속·증여세를 풀지 않는 한 상법 개정으로 압박하고 밸류업(기업가치 제고) 정책을 편다 한들 효과가 낮을 것이라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나아가 국내 기업들에는 자사주 매입만이 경영권을 방어할 유일한 수단인 상황이어서 해외에 있는 차등의결권, 포이즌필(신주인수선택권), 황금주 등을 허용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25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한 중견기업의 창업자이자 최대주주가 사망했는데 이 사실을 대외에 알리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회사는 구체적인 이유를 밝히지 않았으나 업계에서는 창업자가 자녀에게 지분을 증여하지 않은 채 급작스럽게 사망하면서 향후 발생할 불확실성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서라는 해석이 나왔다. 업계 관계자는 “수년 전 지분 매각을 통해 증여세 절감을 고민했지만 창업자가 사업에 대한 애착이 컸기 때문에 협상이 타결되지 않았다”면서 “상속 문제가 정리될 때까지 다소 혼란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기업들은 상법 개정안을 통해 고치려는 대주주의 자사주 편법 활용, 견제 없는 기업 지배구조 등은 대주주가 승계 자금을 확보할 수 있는 길을 터주면 해소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기업 지배구조 전문 변호사는 “과거 일부 대기업 오너가 일감 몰아주기를 통해 현금을 확보한 경우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중견·중소기업은 경영권을 승계할 자금이 없다”고 강조했다.
구체적으로 대한상공회의소와 중견기업연합회는 상속세와 자본이득세를 결합한 새 대안을 제시했다. 경영권과 직결되는 주식 등 유가증권 상속 자산에 한정해 상속 시점에 상속세율 10~30%를 먼저 부과하고, 이후 처분 시점에 추가로 20%를 내도록 하는 방안이다. 기준 금액 600억 원 이하는 부동산 등 다른 자산과 합산해서 현행 상속세를 부과하고 초과분에 대해서만 자본이득세를 내면 세수 확보나 형평성 논란 소지가 적다. 600억 원은 가업상속공제 한도에 해당한다.
아울러 업계는 상속세를 한꺼번에 내야 하는 부담을 줄이기 위해 현행 대기업 기준 10년 분할 납부에서 5년 거치 5년 분할 납부를 허용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한꺼번에 상속세를 내기 위해 주식담보대출을 받거나 일부 지분을 사모펀드(PEF)에 매각하면서 경영권이 흔들렸던 한미약품그룹 같은 사례를 막기 위해서다.
특히 자사주 원칙적 소각의 경우 법으로 강제하지 말고 세제 혜택을 통해 유도할 필요가 있다고 하소연한다. 독일은 자사주를 최대 10%까지 보유할 수 있고 이를 넘는 자사주를 소각하면 세제 혜택을 준다. 투자은행(IB) 업계 관계자는 “자사주를 제3자에게 매각해 의결권을 살리는 등 경영권을 강화하는 데 편법으로 쓸 때만 강력 처벌하면 된다”고 비판했다.
법무부는 2011년 경영권 보호 장치인 포이즌필 도입 대신 비상장사까지 자사주 매입을 허용했다. 당시 많은 기업이 회삿돈으로 자사주를 사들여 대주주 일가의 경영권을 확충했다. 이후 승계 과정에서 창업가이자 1대 주주가 가진 자사주를 회사가 사들여 양도소득세만 부담한 채 현금을 확보하고 2세이자 2대·3대 주주들은 상속·증여세 부담 없이 회사 보유 지분과 함께 경영권을 승계받는 효과를 누렸다. 분명한 편법이지만 50%에 이르는 세율을 부담하려면 2대·3대에 가서는 경영권 지분이 없어지기 때문에 불가피했다는 게 기업인들의 설명이다. 또한 재계는 자사주 소각을 강제하려면 포이즌필을 도입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 밖에 창업자의 역량이 기업 성장에 결정적인 경우 차등의결권을 도입해 경영권을 보호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쿠팡은 2021년 미국 나스닥 상장 당시 김범석 이사회 의장이 2% 지분으로 58%의 의결권을 갖고 있었다. 막대한 손실을 감수하고 물류 투자를 밀어붙인 쿠팡은 대기업을 제치고 유통 업계 최강자가 됐지만 개정 상법대로면 김 의장의 결정은 총주주 이익 침해로 간주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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