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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업의 매력은 생각이 곧바로 검증된다는 점입니다. 맞으면 맞고, 틀리면 틀린 결과가 즉시 드러나죠.”
지난해 키움증권의 ‘구원투수’로 취임한 엄주성 키움증권 대표는 24일 서울 여의도 키움증권 본사에서 진행한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증권업에 발을 들인 배경으로 ‘핑계를 댈 수 없는 세계’의 매력을 꼽았다. 엄 대표는 대학 시절 관심사로 철학과 종교·사회운동을 넘나들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붙들고 살았지만 답은 쉽게 오지 않았다. 반면 증권업은 생각의 로직이 바로 평가를 받고 그 결과가 무엇보다도 명확하다는 점에서 그를 사로잡았다.
대우증권(현 미래에셋증권)에서 처음 증권업에 발을 들인 엄 대표는 입사 직후 매 순간 바뀌는 시세와 시장의 넓이를 체감하며 겸손함의 가치와 깨달음을 얻었다. 그는 ‘시간이 우리를 존재하게 한다’는 영화 ‘루시’의 메시지를 인용하며 “주식시장의 본질 역시 결국 시간이라는 점을 절감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시장의 흐름을 좇으면서 시시각각 변화하는 현상을 기록하고 예측하는 일이 증권인의 존재 이유”라고 설명했다.
엄 대표가 2007년 키움증권으로 이직한 이유는 단순했다. 기존 투자은행(IB) 부문에서 기업공개(IPO) 업무를 맡아 회사들을 찾아가고 발굴한 후 상장까지 일을 맡다 보니 자연스레 투자가 눈에 들어온 것이다. 리테일 사업에만 집중하던 키움증권을 보며 ‘브로커리지 수익을 기반으로 새로운 투자 역량을 키울 수 있겠다’는 판단에 따라 합류를 결정했다는 설명이다. 엄 대표는 “키움증권에서 러브콜이 왔을 때 돈을 벌 능력은 충분해 보였고, 내가 잘 운용하면 더 큰 성과를 낼 수 있겠다는 판단이 들어 도전에 나섰다”고 했다.
키움증권에서 맞닥뜨린 가장 큰 위기는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 찾아왔다. 당시 자기자본투자(PI) 부문장이던 그는 전례 없는 손실 앞에서 잠 못 이루는 날을 보냈다. 다만 세상이 멈추고 기업 상황이 악화하는 현실에 익숙해지는 것을 경계하며 ‘걸어가야만 앞이 보인다’는 신념 하나로 위기를 버텼다. 그는 “포워드 PR이라는 개념은 단순히 앉아서 미래를 예측하는 게 아니라 직접 걸어가면서 생각을 바꾸는 것”이라며 “고민과 사유에 고착되지 않고 주변과 소통하며 끊임없이 움직여야 예측이 달라지고 길이 열린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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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 대표 리더십의 뿌리 역시 행동과 소통이 중요한 좌표였다. 신입 사원 시절 한 상사가 보고서를 일일이 연필로 수정해 책상에 올려둔 경험이 전환점이 됐다. 엄 대표는 “당시만 해도 맞아가면서 일을 배우는 등 거친 근무 환경에서 살아남아야 했다”면서 “그런 시절에 까마득한 상사가 직접 세심하게 신경 써주는 것을 보며 ‘이 사람한테는 반드시 더 나아진 모습을 보여주겠다’고 다짐했다”고 회상했다. 이를 계기로 ‘사람을 변화시키는 건 다그침이 아니라 개개인을 인정하는 것’이라는 원칙을 세운 그는 지금까지 ‘포지티브(positive) 리더’가 되고자 매일 초심을 되새긴다고 했다.
이 때문에 경영철학의 또 다른 핵심 요소로 조직 문화를 언급하기도 했다. 엄 대표는 “조직 문화를 보면 회사가 어떤 생각을 갖는지 알 수 있다”며 “소통 방식에 따라 고객 가치 창출도 달라진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조직에서 신뢰를 쌓기 위한 제1원칙으로 ‘이해관계자들과의 투명한 소통’을 제시했다. 보통 의사소통 과정에서 문제가 생기는 경우는 혼자 생각하거나 소수가 사담을 통해 중요 사안을 결정할 때라는 이유에서다. 상명하복식 지시보다는 적극적인 직원 참여와 공개적 소통을 꾀함으로써 사업 추진의 속도와 안정성을 동시에 끌어올리겠다는 구상이다.
엄 대표는 일상에서도 균형을 중시한다. 그의 휴대폰 메모장에는 매일 지키고자 하는 루틴과 체크리스트가 빼곡히 적혀 있다. 일찍 자고 일어나기, 하루에 세 번 기도하기, 틈날 때 스트레칭, 일과 끝에 감사한 일을 세 줄 기록하기 등이다. 그는 “대단하거나 특별한 일도 아닌데 매일 지키기 쉽지 않다”며 “그럼에도 적어두고 항상 상기하면서 정제된 삶을 추구하려고 한다”고 했다.
사회 공헌 활동도 그 연장선이다. 대학 시절 사회복지사를 꿈꾸기도 했던 그는 2012년 사내 봉사 단체 ‘키움과 나눔’을 설립해 12년 동안 단장을 맡았다. 키움증권은 장애인, 청소년, 주거 환경 개선을 축으로 임직원들이 자발적으로 봉사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엄 대표는 “기업들이 사회에서 창출한 이윤을 사회에 환원하는 것은 거역할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라며 “키움증권도 사회적 가치를 지속 창출해 또 다른 비즈니스 기회를 만들 수 있는 기업으로 이끌고 싶다”고 되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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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투자에 대한 관심도가 유례없이 높아진 만큼 젊은 투자자에게 조언을 건네기도 했다. 엄 대표는 청년 시절 주식 투자로 집 한 채를 날릴 뻔한 적도 있다며 장기적인 관점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부자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좋은 자산을 오래 갖고 있다는 것”이라며 “청년층이 투자를 100m 달리기가 아닌 42.195㎞를 완주하는 마라톤이라는 인식으로 차근차근 접근하면 좋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상장지수펀드(ETF), 금, 코인 등 다양한 자산을 통한 헤지 전략에도 관심을 가지면서 포트폴리오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투자의 진입장벽을 낮추고 고객 편의성을 담보하기 위해 인공지능(AI) 활용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키움증권은 올 상반기 출시해 이미 10만 명 이상의 고객이 이용 중인 AI 챗봇 ‘키우Me’를 비롯해 금융 상품 정보를 보다 쉽게 제공하기 위한 AI 에이전트 기능 고도화에 나서고 있다. 엄 대표는 “AI를 통해 리테일, 리서치, 자산관리(WM) 등 다양한 영역에서도 실무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며 “AI 업무 포털, AI 에이전트, AI 코파일럿 등 세 축이 키움증권의 핵심 활용 분야”라고 설명했다.
엄 대표는 키움증권 CEO로서 ‘함께 성장한 동반자’로 기억되고 싶다고 항상 생각한다. 그는 직원들로부터 “함께 일하는 게 참 신난다”는 말을, 주주들로부터는 “엄주성이 와서 키움이라는 기업이 자랑할 만한 회사가 됐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고객들로부터는 “투자자 가치 창출을 위해 진심으로 노력하는구나”라는 말을 듣고 싶다고 했다. 특히 그는 “종교와 관계없이 우리는 감사하게도 신으로부터 받은 자원을 누리며 살고 있지 않느냐”며 “이러한 리소스를 통해 개인과 사회가 부를 증대하는 데 키움증권이 ‘좋은 재료’로 쓰이기를 항상 희망한다”고 덧붙였다.
He is…
△1968년생 △연세대 응용통계학 △1993년 대우증권(현 미래에셋증권) 입사 △2007년 키움증권 합류 △2010년 PI본부 이사 △2011년 투자운용본부 이사 △2013년 투자운용본부장 △2022년 전략기획본부장 전무 △2023년 전략기획본부장 부사장 △2024년~ 대표이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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