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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약 회사 비보존제약의 일부 임직원은 2023년 2~3월 미공개 신약 개발 정보를 파악한 뒤 공시 직전 주식을 매수해 수억 원의 부당이득을 취득했다. 지난달 말 증권선물위원회는 금융 당국 조사를 거쳐 이들을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사건 발생 약 2년을 넘긴 시점이다.
자본시장 불공정거래 사건의 사법 처리에 평균 3년이 걸리고 검찰의 기소율은 30%대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자본시장이 양적으로 크게 성장해 불공정거래 사건 수가 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응할 인적자원과 인프라가 부족한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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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이강일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금감원의 자본시장 불공정거래 혐의 사건 연평균 조사 기간은 지난해 274일이다. 2023년 396일보다는 줄었지만 2020년(178일), 2021년(257일)보다는 크게 늘었다. 그동안 금융 당국이 해온 관계기관 간 협업 개선, 제재 수위 상향 등이 무색한 수준이다.
반면 금융 당국으로 접수되는 불공정거래 사건은 늘어나고 있다. 2020년 말 금감원이 조사를 마쳤거나 조사 중인 불공정거래 사건은 94건이었는데 지난해 말에는 133건까지 늘었다. 지난해 국내 주식 투자자 수가 1423만 명으로 5년 만에 약 2.3배 증가하고 같은 기간 시가총액(코스피 시장 기준)도 1476조 원에서 1963조 원으로 성장하는 등 주식시장 참여자들이 폭발적으로 확대된 영향이다.
증권 범죄 대부분은 사실관계나 법리가 복잡하고 신속한 증거 입수가 어렵기 때문에 조사·수사가 늦어질수록 제대로 된 처벌이 어렵다. 검찰연감을 분석한 결과 2019~2023년 검찰의 자본시장법 위반 사건 연평균 처리율은 59.3%, 기소율은 32.3%에 불과했다. 금융 당국의 한 고위 관계자는 “한국거래소 심리에 2개월, 금감원 조사에 10개월, 검찰 수사에 1년, 재판에 1년 등 사건 하나 처리하는 데 평균 3년 이상 걸린다”고 말했다.
금융 당국 및 증권 업계 관계자들은 새 정부가 불공정거래를 근절하려면 사건 관리 체계를 전면적으로 손봐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우선 불공정거래 조사 인력 부족부터 풀어야 한다. 지난달 말 금감원의 조사 인력(조사 1·2·3국, 공매도특별조사단)은 81명으로 정원(92명) 대비 11명(약 12%) 부족하다. 인원은 2023년 95명에서 줄곧 감소세로 2013년만 해도 조사 인력은 130여 명에 달했다. 조사 경험이 풍부한 금감원 출신의 한 인사는 “사람은 적은데 일은 많으니 조사국을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며 “조사 인력을 대폭 늘리고 인센티브를 확대하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중층적 제재 절차와 금융위원회 자본시장조사단, 금감원 조사국으로 나뉜 이원적 조사 구조도 발목을 잡는 요소다. 일반적으로 금융 당국의 조사를 마친 불공정거래 사건은 증선위의 자문 기구인 자본시장조사심의위원회 심의와 증선위의 의결을 거쳐 제재한다. 같은 내용을 뚜렷한 차이 없이 두 번 심의할 뿐 아니라 조치 내용에 대해 사전 통지하기 때문에 주요 혐의자가 도주하거나 증거를 인멸할 위험도 크다.
이는 불공정거래 재범률을 높이는 결과로 이어진다. 금융위에 따르면 불공정거래 전력자 비율(증선위 조치 기준)은 2021~2024년 연평균 28.5%다. 황현영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금감원이 작성한 피고인 문답서와 동일한 내용에 대해 검찰이 처음부터 다시 신문을 해 피의자는 증거 인멸, 증언 조작 등이 가능해진다”고도 지적했다.
실질적으로 사건을 전담하는 금감원의 조사 권한이 빈약하다는 점도 문제다. 강제조사권이 있는 금융위와 달리 금감원에는 영치권(제출된 물건이나 자료를 보관할 수 있는 권리), 현장조사권 및 압수수색권이 없다. 본래는 금감원도 현장조사권과 영치권을 금융위로부터 위탁받아 수행해왔지만 2005년 민간 기구인 금감원에 강제 조사 권한을 부여하는 게 적절하지 않다는 감사원 지적에 이를 행사하지 못하게 됐다. 정작 금융위에도 출국금지요청권·통신사실조회권·증거보전신청권 등 증거 입수를 위한 수단이 부족하다.
금감원의 한 고위 관계자는 “금융 당국의 조사 권한을 확대하는 방안은 인권과 직결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한 것은 맞다”면서도 “적어도 금감원의 전속고발권 등 처리 권한부터 늘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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