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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스자산운용이 조성한 독일 트리아논빌딩 투자펀드에 투자한 개인들이 판매사인 KB국민은행 등을 상대로 본격적인 법적 대응에 나섰다. 사적 화해 내용증명부터 발송해 만족할 만한 보상안을 받지 못하면 금융감독원 분쟁조정 신청, 민사소송까지 불사할 것으로 전망된다. 투자자들은 투자위험 등급 오기, 판매 직원의 대리 사인 등 불완전판매를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KB국민은행 측은 위험 등급 오기는 전산 실수로 발생한 것으로 고의가 아니었다는 입장을 밝혔다.
16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법무법인 한별은 15일 KB국민은행을 상대로 이지스글로벌부동산투자신탁229호(파생형) 펀드 관련 사적 화해를 촉구하는 내용증명을 발송했다. 전액 손실된 해외 부동산 펀드의 불완전판매에 대한 책임을 묻고 투자금 100% 전액 보상을 요구하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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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 화해는 금융소비자 분쟁 첫 단계다. 통상 2주 정도 금융기관의 답변을 기다린 후 합의를 시도한다. 그러나 대부분 사적 화해는 시각 차가 커 무산되고 금융감독원에 분쟁조정을 신청하거나 민사 소송으로 넘어가는 경우가 흔하다.
이 펀드는 당시 국내에서 공·사모 방식으로 총 3750억 원을 모집했다. 개인투자자를 대상으로 하는 공모펀드는 1875억 원을 모았다. 당시 단일 자산에 투자하는 공모펀드 중 국내에서 가장 큰 규모였다. 여기에 현지 금융기관(대주단)으로부터 빌린 약 5000억 원을 더해 트리아논빌딩을 매입했다. 국내에서 독일 트리아논빌딩 공모펀드를 판매했던 금융사는 총 14곳이다. △KB국민은행 △하나은행 △우리은행 △BNK부산은행 △BNK경남은행 △삼성생명 △KB증권 △한국투자증권 △하나증권 △대신증권 △한화투자증권 △DB금융투자 △키움증권 △현대차증권 등이다. 아직 이들 판매사 가운데 자율 배상을 제시한 곳은 없다. KB국민은행을 통해 판매된 금액은 판매사들 중 최고 수준인 약 350억 원으로 알려졌다.
이번 분쟁의 중심인 이지스글로벌부동산229호 펀드는 독일 프랑크푸르트 소재 트리아논빌딩에 투자했다가 자금 조달(리파이낸싱)에 실패했다. 이지스자산운용의 2025년 1월 10일 공시에 따르면 현재 펀드 기준 가격은 0원으로 부채 총액이 자산 총액을 초과한 상태다. 독일에 있는 관련 법인은 2024년 12월 13일에 정식 도산 절차가 개시됐다. 해당 자산의 가치는 선순위 대출 잔액을 크게 밑도는 수준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는 결국 투자자들이 받은 일부 배당금을 제외하면 원금을 회수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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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투자자들이 지적하는 가장 심각한 문제는 펀드 위험 등급을 임의로 하향해 표시한 점이다. 이지스자산운용은 해당 펀드를 투자위험 등급 6등급 중 가장 높은 ‘1등급(매우 높은 위험)’으로 분류했다. 그러나 국민은행은 투자자 확인서에 이를 ‘높은 위험’으로만 기재하고 고객들에게 이 부분을 자필로 작성하게 했다. 이성우 법무법인 한별 변호사는 “이는 민법상 전형적인 표시 착오의 문제로 계약 취소 사유가 된다”며 “설사 고의성이 없더라도 중과실로 중요 사항에 거짓 표시를 한 것으로 불법행위에 따른 손해배상책임이 명백하다”고 강조했다. 내용증명에는 “일부 의뢰인 서류 중에는 육안상으로도 명백한 판매 직원의 서명 위조도 발견됐다”라는 내용도 적시됐다.
더욱 문제가 된 점은 국민은행이 고위험 펀드를 고령자 대상 ‘KB 시니어 특화상품 시리즈’의 1호 상품으로 판매했다는 점이다. 펀드 투자 구조상 현지 은행의 선순위 대출이 있어 자산 가격 하락 시 후순위 투자자의 위험이 가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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