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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소재 등 2차전지 업체들이 대규모 설비투자를 집행하는 과정에서 신용등급 하락을 우려할 정도로 재무 건전성이 악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등 주요국의 정책 불확실성과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둔화) 등으로 업황 회복이 늦어지면서 계열사 지원이나 자산 매각, 대규모 유상증자 등으로 돌파구를 모색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14일 한국기업평가에 따르면 삼성SDI·LG에너지솔루션·SK온 등 주요 배터리 셀 제조 업체 3개사의 순차입금 규모는 2021년 말 10조 8000억 원에서 지난해 말 41조 5000억 원으로 284.3% 증가했다. 에코프로·포스코퓨처엠·SK아이이테크놀로지(SKIET)·SK넥실리스 등 2차전지 소재 기업 4개사의 순차입금 합계는 1조 1000억 원에서 8조 원으로 627.3% 급증했다. 2021년부터 공격적으로 생산 설비 증설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주로 차입을 통해 자금을 조달한 결과다.
전기차 시장 침체 장기화에 따른 실적 부진으로 재무 건전성은 빠르게 악화하고 있다. 올해 1분기 잠정 실적 발표 결과 삼성SDI는 영업손실이 4341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적자 전환했고 SK온도 배터리 부문의 조정영업이익이 2993억 원 손실이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LG에너지솔루션도 연결 기준 흑자를 냈으나 미국의 첨단제조생산세액공제(AMPC) 보조금을 제외하면 2024년 1분기 이후 1년째 영업손실이 이어지고 있다. 국내 셀 3사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소재 업체들도 매출 규모가 축소되는 등 부정적인 영향을 받고 있다. 미국의 친환경 정책 기조 후퇴와 중국 업체와의 경쟁 심화 등으로 단기간 실적 개선을 통해 재무 부담을 줄이기는 어렵다는 관측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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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는 돈은 많지 않은데 빚만 잔뜩 늘어나자 2차전지 업체들의 신용등급 하향 압력이 어느 때보다 커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올해 3월 국제 신용평가사인 무디스는 SK이노베이션 신용도를 투자 적격인 ‘Baa3’에서 투기 등급인 ‘Ba1’로 하향 조정했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차입금 증가와 수익성 저하 등을 이유로 LG에너지솔루션의 장기 발행자 신용등급을 ‘BBB+’에서 ‘BBB’로 낮췄다. S&P가 POSCO홀딩스의 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낮춘 것도 2차전지 설비투자 부담 등을 감안한 결과다. 앞서 나이스신용평가도 에코프로의 신용등급 전망을 부정적으로 강등했다.
국내외 신용평가사들이 2차전지 업체들의 자금 조달 방식을 주목 중인 만큼 금융기관 차입이나 회사채·신종자본증권(영구채) 발행보다는 유상증자나 보유 자산 활용 등 다른 방법을 찾을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올 들어 삼성SDI(1조 7282억 원)에 이어 포스코퓨처엠(1조 1000억 원)마저 조 단위 유상증자에 나선 것은 이 같은 배경 때문이다. 포스코퓨처엠은 증권신고서를 통해 “추가적인 부채성 조달 시에는 재무 건전성이 악화돼 신용등급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해 유상증자를 결정하게 됐다”며 “재무 건전성을 포함해 최적의 자금 조달 방법을 고민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포스코퓨처엠의 장기차입금은 2021년 말 1801억 원에서 올해 1분기 1조 6326억 원으로 불과 3년 만에 9배 증가했다. 지난해 말 기준 순차입금은 3조 130억 원으로 상각전영업이익(EBITDA) 1848억 원의 16.3배로 한기평의 하향 변동 기준인 5배를 크게 웃돌고 있다. 부채 비율도 139.0%까지 확대돼 하향 기준인 150%에 근접한 상태다.
민원식 한기평 선임연구원은 “이번 정기 평가에서 재무적 대응 역량을 중점적으로 모니터링한 뒤 이를 바탕으로 신용도를 재검토할 예정”이라며 “계열사로부터 지원을 받거나 유상증자, 유휴 자산 매각 등 자구책이 이뤄져야 재무 안정성이 더 하락하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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