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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회사의 후배들과 함께 광릉을 방문했다. 경기 남양주에 위치한 광릉은 조선 7대 임금인 세조의 능(陵)이다. 주변 환경도 수려해 인근에 있는 광릉 국립수목원은 이 가을에 꼭 한 번 가볼 만하다.
7~8년 전 우연히 조선왕릉에 대한 책을 읽고 조선의 모든 왕릉을 방문해보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어디서부터 시작할까 하다가 서울 안에 위치한 선정릉부터 시작했다. 강남 한복판에 조선왕릉이 이렇게 잘 보존되어 있으면서 공원 같은 편안한 느낌을 준다는 것이 참으로 신기했다. 대부분의 시민들은 선정릉역을 알고 있지만 막상 선정릉을 가본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선정릉에 들어가면 왼쪽에 있는 선릉은 성종과 왕비 정현왕후의 능이며, 오른쪽에 위치한 정릉은 중종의 능이다. 세명의 왕비 누구와도 합장되지 못한 중종의 사연도 애처롭다.
조선왕릉을 돌아보는 데 3년정도 걸렸다. 조선의 왕릉은 개성에 있다는 2대 정종의 능을 제외하면 모두 남한에 잘 보존돼 대부분 방문할 수 있다. (참고로 국가유산청이 관리하고 있는 조선왕릉은 왕비와 추존왕을 합쳐 40기다.) 모든 왕릉이 유사한 형태이기는 하지만, 각 능마다 자연 환경과의 조화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신비롭다. 개인적으로는 여주에 있는 세종 영릉, 구리시에 있는 동구릉, 그리고 화성에 있는 장조(사도세자)와 정조의 융건릉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조선왕릉을 돌아보면서 몇 가지 느낀 점이 있다. 첫 번째는 조선 왕마다 가진 다른 형태의 리더십과 정치력이다. 태조, 태종, 세조와 같이 강한 리더십을 바탕으로 정치를 이어간 왕이 있고, 세종, 성종, 정조 등 학문의 발전과 중재적 리더십을 발휘한 임금도 있었다. 모든 리더들이 각자의 고유한 리더십을 발휘하듯이 조선의 왕들도 그러했다. 사실 유교적 기반을 가진 조선의 제도상 왕은 절대적 권력자라기보다 도덕적 지도자에 가깝긴 하다.
두 번째는 권력의 허망함이다. 조선 왕들의 평균 수명은 47세였다. 그나마 일반 백성들보다는 훨씬 오래 살았을 것이다. 수명에 비해 재위 기간은 평균 19년으로 비교적 길었다. 조선의 왕들은 어려서부터 학문적으로 깊은 교육을 받고, 특히 세자로 책봉되면 정치적인 준비도 많이 했다. 막상 임금이 되면 절대적인 권력을 누리지만, 성리학을 기반으로 한 신하들에게 많은 도전과 위협도 받았다. 권력은 남용해도 문제지만 지키기도 어렵다. 독살된 것으로 의심되는 왕이 있는 것에서 보듯이 권력 투쟁은 예사롭지 않았다. 하지만 왕들에게도 결국은 남들보다 조금 더 클 뿐인 무덤만이 남았다. 왕의 권력도, 기업의 권력도 그리 길지 않다. 능을 거니는 동안 로마 승전 장군의 승전식에서 들려준다는 ‘메멘토모리(죽음을 기억하라)’가 귓가를 맴돌았다.
세 번째는 이러한 왕릉을 잘 보존한 조선의 제도다. 조선 왕릉은 효(孝)와 예(禮)의 유교적 예법을 기반으로 국가 차원에서 오랜 기간 체계적으로 관리됐다. 이집트의 피라미드나 중국 진시황릉과 같은 규모에 비한다면 조선의 왕릉은 소박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조선왕릉처럼 500년의 오랜 기간동안 동일한 양식과 규례에 따라 모든 왕의 능이 조성되고 잘 보존되고 있는 사례는 없지 않을까 한다.
조선왕릉은 2009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이번 주말, 시간이 된다면 조선왕릉 한곳에 가보기를 권한다. 어디를 가냐고? 태조의 건원릉을 포함해서 아홉 개 능을 한 번에 돌아볼 수 있는 구리의 동구릉이나, 참나무와 소나무 숲이 무성한 서울의 동쪽 태릉에 가보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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