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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정부가 예산 삭감을 이유로 팁스(TIPS) 지원금을 줄이면서 회사가 급격히 어려워졌습니다. 전세 자금으로 쓸 4000만 원까지 회사에 보탰고 월세도 못 내는 지경이었습니다.”
핀테크 스타트업에서 근무하고 있는 박 모 씨는 지난해 겪은 구조조정 과정을 악몽 같았다고 회상했다. 박 씨의 회사는 팁스 지원금이 끊기면서 지옥으로 변했다. 정부 지원금을 기반으로 직원 월급을 주며 외형을 키워왔던 탓이다. 대표는 집을 담보로 1억 원을 마련했지만 ‘언 발의 오줌 누기’였다. 결국 회사 전체 비용의 70%를 차지하는 인건비 절감을 위한 구조조정을 시작했다. 초창기 멤버로 합류했던 박 씨가 아픈 손가락을 잘라내는 일을 맡았다. 그는 “정들었던 직원들을 절반 이상 내보내는 일을 직접 하다 보니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며 “이제 막 40살이 넘었는데 병원에서 암 전 단계 판정을 받고 수술까지 받았다”고 전했다.
투자 한파에 벤처스타트업 업계, 특히 플랫폼 기업들이 아수라장이 됐다. 광고와 수수료 외에 수익 구조가 마땅하지 않은 상황에서 경기 침체가 이어지면서 투자자들이 플랫폼 기업에 지갑을 열지 않고 있어서다. 팁스 지원금 미지급 사태 등 정부 지원금 감소와 기업의 인공지능 전환(AX)까지 더해져 플랫폼 기업의 미래 전망을 어둡게 만들고 있다. 이에 퇴직자들의 퇴직금과 밀린 임금을 받는 일은 더 어려워지고 있다.
교육·강연 플랫폼 기업에서 그래픽 디자이너로 재직했던 강 모 씨도 퇴사 후 5년째 대표를 쫓아다니며 퇴직금 반환을 요구하고 있지만 현재까지 그가 손에 쥔 돈은 한 푼도 없었다. 대표는 퇴사 당시 퇴직금을 약속했지만 처음 몇 달 10만~20만 원씩 입금하더니 연락을 끊었다.
강 씨는 “한 동료는 ‘고향에 조폭 형님이 있다’고 대표를 협박해 퇴직금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며 “나를 뽑아준 첫 회사라 복잡 미묘한 감정 속에 대표에게 강압적으로 반환 요구를 하지 못한 게 후회도 된다”고 털어놓았다.
일각에서는 빈약한 스타트업의 퇴직금 적립 구조가 이 같은 피해를 키운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실제 법적 의무인 퇴직연금 가입도 미뤄 놓은 스타트업이 대부분이다 보니 갑작스러운 구조조정 때 퇴직자들은 빈손으로 회사를 나오는 경우가 허다하다.
실제 벤처업계를 대표하는 기업에서도 퇴직금 미지급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한 소셜커머스 회사에서 근무한 30대 후반 박 모 씨는 지난해 7월 동종 업계 타사로 이직을 확정지었다. 퇴직금 정산 절차를 밟으려던 박 씨는 회사 내부에서 ‘퇴직금 미정산 사태’가 불거지며 빈손으로 회사를 나오게 됐다.
박 씨는 “10년 넘게 몸담은 회사를 빈손으로 떠날 줄은 몰랐다”며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은 동료들 앞에서 ‘퇴직금을 못 받았다’는 말을 꺼내기도 어려웠다”고 토로했다.
HR 플랫폼 스타트업에서 직원 70명의 구조조정을 주도한 한 임원은 “퇴직금을 쌓지 않아도 법적 제재를 받거나 정부 지원 사업에서 불이익을 겪는 경우가 없다 보니 퇴직연금에 가입한 곳은 소수에 불과하다. 우리 회사만 해도 당장 6억 원이 없어 직원을 내보냈는데 퇴직금은 줄 엄두도 못 냈다”며 “퇴직금 미지급 3회면 고용노동부에 임금 체불 기업으로 낙인찍히는 만큼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퇴직금 지급 보증 계약을 임의로 작성하고 직원을 달래는 방법 밖에 없었다”고 하소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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