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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투자은행(IB) 베테랑 정영채 고문이 메리츠증권에서 첫 작품을 내놓았다. SK이노베이션(096770)의 5조 원 규모 액화천연가스(LNG) 사업 유동화 거래를 따내는 성과를 올렸다. 글로벌 사모펀드(PEF) 운용사가 독식하던 국내 대기업 리밸런싱 거래를 사실상 처음으로 토종 IB가 가져온 것이다. 인수금융에 머물렀던 토종 IB의 영토를 넓힌 기념비적 거래라는 평가다.
16일 IB 업계에 따르면 SK이노베이션은 메리츠증권을 LNG 자산 유동화의 우선협상 대상자로 선정했다. 메리츠증권은 6%대의 낮은 금리와 SK온에 주가수익스와프(PRS) 방식으로 직접 지원한다는 조건을 제시했다. 애초 거래 완결성을 무기로 우협 선정이 유력하다고 점쳐졌던 글로벌 PEF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와 브룩필드자산운용 등은 메리츠의 파격적 제안에 경쟁에서 밀렸다. KKR은 8%대 금리를 제시했다가 막판에 6%대까지 대폭 낮췄지만, 메리츠보다는 높은 수준으로 전해졌다. 브룩필드의 금리는 8%대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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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거래로 SK이노베이션은 5조 원을 조달하게 됐다. 유동화 대상 자산은 SK이노베이션의 LNG 민간 발전소 최대 4곳(광주·여주·하남·위례)과 2차전지 계열사 SK온 지분 일부(PRS 방식)다. IB 업계 관계자는 “SK이노베이션에 5조 원을 지원하는 방안은 확정된 상황이고, 세부적인 구조는 여전히 논의 중”이라고 설명했다. 메리츠증권은 발전 자회사들에 3조 원 규모의 전환우선주(CPS)로 우선 투자하고, SK온에는 2조 원을 PRS 형태로 지원하는 방안을 제안한 것으로 전해졌다. 반면 경쟁자였던 KKR과 브룩필드는 LNG 민간 발전소 4곳에 대해 상환전환우선주(RCPS)를 발행하는 구조로 8~9%대 금리를 제시했다.
메리츠증권이 이번 거래를 따낸 결정적 요인은 경쟁사보다 낮은 금리를 제시한 데다 정 고문의 막강한 SK그룹·기관 투자자 네트워킹이 작용했다는 후문이다. 특히 유력한 경쟁자로 꼽혔던 KKR은 애초 8%대 금리를 제시했다가 메리츠랑 격차가 크게 나자 6%대까지 낮췄지만 메리츠보다 최종 금리는 소폭 높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메리츠금융그룹 고위 관계자는 “글로벌 PE는 기관 투자자(LP) 자금을 받아 일정 수익률을 보장하면서, 자체 운용 수익도 올려야 해 경쟁력 있는 금리를 제시하기 어렵다”며 “메리츠는 고유 자금을 투입해 경쟁력 있는 금리를 제시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번 거래는 정영채 전 NH투자증권 사장이 메리츠증권 상임고문으로 자리를 옮긴 후 진두지휘한 첫 대형 거래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정 고문은 SK그룹과 쌓아온 탄탄한 네트워크를 십분 활용하면서 직접 국내 기관투자가들을 접촉하며 거래 성사에 공을 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기존의 고금리 대출 이미지를 벗고 ‘정통 IB’로 거듭나려는 메리츠증권의 변화를 상징하는 거래라는 평가가 나온다. 현재 메리츠증권은 발행어음 인가를 받을 경우 이번처럼 사업 재편이 필요한 기업에 글로벌 PE 대비 경쟁력 있는 금리로 투자를 적극 늘려나갈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메리츠증권은 조달해야 할 자금 중 일부를 계열사인 메리츠화재와 메리츠캐피탈을 통해 소화할 것으로 보인다. SK이노베이션은 이번 자금 조달로 유동성 위기론을 잠재울 수 있게 됐다. 확보한 자금은 자회사 SK온의 재무적투자자(FI) 자금 상환 등에 사용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향후 SK온과 SK엔무브 합병을 위한 발판이 될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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