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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플러스가 신청한 회생 인가 전 인수합병(M&A)에 대해 최대 채권자인 메리츠금융지주(138040)가 사실상 동의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법원이 다음 주 초 M&A 개시를 허가할 것으로 관측되는 가운데 홈플러스의 새 주인 찾기 시도가 속도전에 돌입하는 양상이다.
18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메리츠화재·증권·캐피탈 등 3사는 이날 회의를 열고 홈플러스의 회생 인가 전 M&A 건에 대해 큰 틀에서 협조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메리츠는 이 같은 내용을 담아 19일까지 서울회생법원에 의견서를 제출할 계획이다.
메리츠는 지난해 홈플러스에 1조 2000억 원 규모의 대출을 해주면서 홈플러스가 보유한 자가 점포 63곳을 담보로 잡았다. 현재 우리은행 신탁을 통해 해당 부동산을 확보하고 있어 담보권을 행사한 뒤 대출금을 회수할 수도 있다. 그러나 메리츠 측은 홈플러스가 파산할 시 사회 전반에 미칠 파급효과를 고려해 회사를 일단 살려야 한다는 데 공감대를 이룬 것으로 파악됐다.
앞서 삼일회계법인은 12일 조사보고서를 통해 홈플러스의 청산가치는 약 3조 6816억 원으로 계속기업가치 약 2조 5059억 원 대비 높다고 평가했다. 채무자회생법에 따르면 청산가치가 계속기업가치보다 클 경우 원칙적으로 회생절차를 폐지하고 청산해야 한다. 메리츠 역시 1조 2000억 원의 대출금을 상환받지 못하고 있는 만큼 법원에 청산을 주장할 수 있으나 이 같은 의견을 일단 배제하면서 홈플러스의 M&A는 탄력을 받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시장에서는 유통업 확장을 노리는 잠재 인수자들이 관심을 가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예정됐던 회생계획안 제출 기한(7월10일)은 새 인수자가 확정된 이후로 연기될 전망이다.
메리츠금융지주가 18일 홈플러스의 회생계획 인가 전 인수합병(M&A)에 대해 동의하는 쪽으로 의견을 내면서 법원의 판단도 신속하게 나올 것으로 보인다. 투자은행(IB) 업계와 법조계에선 “서울회생법원이 이르면 23일, 늦어도 다음주 중에는 M&A 허가 판단을 내릴 것”이라 보고 있다.
메리츠금융이 이번 인가 전 M&A에 힘을 싣게 된 것은 회사를 파산으로 몰고 갈 시 파장이 매우 커질 수 있다는 우려에 따른 것이다. 홈플러스는 직고용 임직원이 1만 9000명이 넘는데다 임차점포와 납품업체를 포함하면 상거래처도 6000곳이 넘는다. 만약 메리츠가 담보권을 행사해 홈플러스 점포들을 처분하면 전국 수십곳 지점들이 강제 폐점될 수 있다. 이 경우 이해관계자 대다수에 피해가 발생해 사회적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된다.
IB업계 관계자는 “메리츠가 청산 방향으로 의견을 내더라도 법원에서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직권으로 M&A를 허가할 가능성도 높다”면서 “이런 상황을 고려해 일단 새 인수자를 찾아 채권 회수 길을 여는 게 현실적 방안이라 판단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메리츠는 1조 2000억 원에 달하는 채권을 중장기적으로 보호하기 위해서는 우량 기업에 홈플러스를 넘기는 게 현실적이라는 분석을 하고 있다. 현 최대주주 MBK파트너스가 지분 출자금 전액(2조 5000억 원)을 포기하기로 하면서 M&A 성공을 위한 판이 깔린 것도 한몫 했다.
새 최대주주의 인수 대금이 홈플러스에 전액 유입되는 게 메리츠 입장에서는 긍정적 대목이다. 이번 인가 전 M&A는 홈플러스가 인수자에게 신주를 발행하는 형태로 진행된다. 향후 회생 계획안에 따라 이 인수대금 중 일부는 메리츠 측의 채권 회수 자금으로 쓰일 수도 있다.
만약 우량 기업이 홈플러스를 품을 시 메리츠는 미리 쌓아둔 충당금을 다시 자본으로 회수하는 게 가능하다. 현재 업계에서는 한화·GS그룹과 쿠팡, 네이버 등을 인수 후보자로 꼽는다. 메리츠금융은 올 1분기에만 충당금 178억 원, 준비금 2255억 원을 적립한 바 있다.
예상대로 다음주 중 법원의 허가가 떨어지면 즉각 매각주관사 선임 절차가 시작될 전망이다. 주관사 선정은 현재 법정관리인을 맡고 있는 김광일·조주연 홈플러스 각자대표가 추천하면 법원이 정하게 된다. IB 업계에서는 홈플러스 측이 대형 회계법인과 법무법인 컨소시엄에 매각 작업을 맡겨 속도를 낼 것으로 예상한다. 주관사의 실사와 공개입찰을 거쳐 우선협상대상자가 선정되면 이르면 연내 새 주인과의 주식매매계약(SPA)이 체결될 수도 있을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인가 전 M&A 절차에 대략 24주 정도의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다만 이번 건의 경우 M&A 규모가 전례 없는 수준으로 큰 데다 구조가 복잡하고 다양한 이해관계자들과의 협상을 거쳐야 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이에 통상적 회생절차 M&A에 비해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될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할 것으로 전망된다.
관건은 가격이다. 아직 IB 전문가들조차 홈플러스의 적정 인수 가격이 얼마일지에 대해 쉽게 예단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채권자들이 보유한 채권액 중 총 얼마를 갚아주고 남겨둘지에 대한 판단도 다시 해야 한다. 인수 후보자마다 회사의 미래를 어떻게 그려나갈 것인가에 따라 적정 기업가치 산정은 천차만별일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아무리 홈플러스의 청산가치가 높고 체질 개선에 대한 밝은 가능성을 본다고 해도 무너져가는 거함을 고액에 품는 것은 쉽지 않다는 평가도 나온다. 홈플러스는 2021회계연도부터 영업손실로 전환한 뒤 수년째 적자를 기록 중이다. 높은 부동산 가치만 보고 덜컥 샀다가는 고난을 겪을 가능성이 있다. 메리츠금융 관계자는 “홈플러스의 M&A에는 반대하지 않는다”면서도 “홈플러스와 대주주의 강도 높은 자구책을 지켜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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