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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그룹 물류 계열사 롯데글로벌로지스의 재무적투자자(FI)가 대규모 주식매도청구권(풋옵션)을 행사해 롯데그룹으로부터 약 4000억 원을 받기로 결정했다. FI가 기업공개(IPO) 불발로 풋옵션을 단행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다.
12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롯데글로벌로지스의 2대 주주인 에이치프라이빗에쿼티(PE)는 최근 롯데지주·호텔롯데 측에 3789억 원 규모의 풋옵션 행사 계획을 통보했다. 에이치PE는 2017년 롯데글로벌로지스에 투자하면서 IPO 불발 등의 경우 주식을 되팔 수 있는 계약을 맺었는데 최근 IPO가 사실상 무기한 연기되면서 풋옵션을 행사하기로 한 것이다.
에이치PE의 풋옵션 행사가는 주당 5만 720원이다. 이는 롯데글로벌로지스의 최근 희망 공모가 범위(밴드)였던 1만 1500~1만 3500원 대비 약 4배 높은 가격이다.
롯데글로벌로지스의 최대주주·4대 주주인 롯데지주·호텔롯데가 풋옵션에 따라 시가의 4배에 육박하는 가격으로 FI 보유 지분을 되사게 되면서 최근 순차입금 40조 원을 넘긴 롯데그룹으로서는 약 4000억 원을 단번에 지출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또 풋옵션을 가진 FI가 수천억 원 규모로 권리를 행사하는 사례가 실제 발생하면서 FI와의 계약으로 IPO 시한을 가진 채 상장 추진을 미루고 있는 다수 기업에 주는 파장이 작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에이치PE는 현재 보유하고 있는 3789억 원 상당 롯데글로벌로지스 주식의 풋옵션 행사 방침을 내부적으로 확정하고 세부 매각 일정을 롯데지주·호텔롯데와 협의하고 있다. 에이치 PE는 2017년 유한회사 엘엘에이치를 통해 롯데글로벌로지스에 2790억 원을 투자해 지분 21.87%를 확보한 2대 주주다. 롯데지주(지분율 46.04%)는 1대 주주, 호텔롯데(10.87%)는 4대 주주로 있다. 에이치 PE는 롯데글로벌로지스 투자 과정에서 IPO 불발 등에 따라 주식을 되팔 수 있는 풋옵션 권리가 포함된 주주 간 계약을 맺었다. 시한은 올 상반기까지다.
에이치 PE는 이번 풋옵션 행사를 통해 원금 보전을 웃도는 수준의 수익을 얻을 수 있게 됐다. 에이치 PE의 풋옵션 행사가는 1주당 5만 720원으로 롯데글로벌로지스의 최근 희망 공모가 밴드였던 1만 1500~1만 3500원의 4배에 달한다. 이는 약 8년 전 브리지론 조달 비용을 포함한 롯데글로벌로지스 지분 취득가인 1주당 3만 8250원과 비교해서도 32.6% 높다. 이에 따라 최초 투자 당시 결성한 프로젝트 펀드인 ‘에이치감마1 사모투자합자회사(PEF)’와 ‘에이치감마2 PEF’의 유동성공급자(LP)를 대상으로 한 약정 수익금 지급도 어렵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말 기준 40조 원을 웃도는 순차입금을 가진 롯데그룹 입장에서는 재무 부담이 커지게 됐다. 롯데그룹은 롯데글로벌로지스의 IPO를 수차례 연기했는데 이때마다 에이치 PE에 더 높은 수익률을 보장해주는 조건으로 풋옵션 발동 기한을 연장했다. 2017년 4월 최초 계약 당시 양측이 합의한 보장 수익률은 연복리 3.0%였지만 상장 추진이 미뤄지고 2021년 3월 계약이 수정되면서 보장 수익률이 3.5%로 높아졌다. 2023년 4월에는 재차 수정 계약이 체결되면서 민간채권평가회사 5개사가 평가한 평균 채권시가 평가기준수익률(당시 약 3%)에 1.3%를 가산한 수준까지 높아졌다.
롯데그룹은 문화 사업 계열사인 롯데컬처웍스의 IPO 불발에 따른 풋옵션 리스크도 짋어지고 있다. 롯데그룹은 2019년 정성이 이노션 고문과 롯데컬처웍스 주식 교환(지분 스와프)을 단행하면서 IPO 무산에 따른 풋옵션 권리를 부여했는데 관련 조항이 여전히 유효한 상황이다. 롯데시네마를 운영하는 롯데컬처웍스는 최근 메가박스와의 합병을 추진한 뒤 상장을 추진할 수 있지만 IB 업계에서는 최근 영화 산업 침체에 IPO 시장 위축 흐름까지 고려할 때 원활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상반기 IPO ‘대어’로 주목받았던 롯데글로벌로지스의 FI가 수천억 원의 풋옵션 권리를 실제로 발동하면서 FI와의 풋옵션 계약에 묶인 여타 상장 추진 기업에 미치는 여파도 작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기업가치가 수조 원대로 평가되는 케이뱅크 최대주주인 비씨카드는 베인캐피털 등 FI와 2026년 7월까지 상장이 이뤄지지 않을 시 FI가 동반매각청구권 및 풋옵션을 행사할 수 있다는 계약을 맺었다. 케이뱅크는 두 차례 공식적으로 IPO를 추진·철회한 후 최근 재추진에 나섰다.
IB 업계 관계자는 “롯데그룹은 여러 차례 계열사의 IPO를 연기하면서 계약을 수정한 끝에 FI에 물어줘야 하는 금액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게 됐다”고 평가했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롯데지주와 호텔롯데는 모두 FI에 풋옵션 대금을 지금하기 위한 재무적 준비를 마쳐 자금 마련 및 지급에 문제가 없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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