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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조~5조 원의 몸값으로 올 상반기 ‘대어’로 꼽힌 DN솔루션즈가 기업공개(IPO)를 전격 철회했다. 추정 기업가치 대비 할인율을 50% 가까이 가져갈 정도로 상장 완주에 대한 의지를 보였지만 기관투자가 대상 수요예측에서 부진하자 증시 입성 시기를 미루기로 결정했다. 올 초 약 6조 원의 기업가치로 상장한 LG CNS가 부진한 주가 흐름을 이어가는 가운데 DN솔루션즈마저 물러나면서 IPO 시장에 다시 찬바람이 불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30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DN솔루션즈는 이날 한국거래소에 IPO 철회 신고서를 제출하고 상장 추진을 미루기로 했다. DN솔루션즈는 “최종 공모가 확정을 위한 수요예측을 실시했으나 현재와 같은 대내외 금융시장 환경의 불확실성이 큰 상황에서는 당사의 가치를 적절히 평가받기 어려운 측면 등 제반 여건을 고려해 잔여 일정을 취소한다”고 밝혔다.
DN솔루션즈는 글로벌 3위 공작기계 기업으로 희망 공모가 범위(밴드·6만 5000~8만 9700원) 기준 시가총액이 4조 1039억~5조 6634억 원이었다. DMG모리·오쿠마·화낙 등 비교 기업의 주가수익비율(PER) 평균치를 활용해 추정 기업가치를 산출한 뒤 최대 48.6%의 할인율을 적용해 최종 희망 공모가 밴드를 정했지만 22~28일 실시한 기관 대상 수요예측에서 주문이 예상 밖으로 적게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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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N솔루션즈에 대한 투심이 악화한 배경으로는 관세 리스크가 꼽힌다. DN솔루션즈는 지난해 매출의 80% 이상이 해외에서 나왔는데 최근 격화하는 글로벌 무역 분쟁에 따라 채산성이 악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참여한 기관 다수도 밴드 하단 미만에 주문을 넣은 것으로 알려졌다. 대표 주관사인 미래에셋증권·삼성증권·UBS증권 등은 하단으로 공모가를 확정해 추진하자는 의견도 제시했지만 회사 측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발 관세 리스크로 인해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한다고 인식한 것으로 전해졌다.
DN솔루션즈의 경우 한국투자프라이빗에쿼티(PE) 등 재무적투자자(FI)들과 올 상반기 내 상장을 약속한 상태였다. 다만 FI들은 IPO 일정 연기에 동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DN솔루션즈 관계자는 “이미 발표한 성장 전략과 투자 계획은 차질 없이 실행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시장에서는 국내 상장 추진 기업에 대한 해외 기관의 냉랭한 투심이 다시 한번 확인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올 1월 상장한 LG CNS의 수요예측에 들어온 기관 2059곳 중 해외 기관은 128곳(6.2%)에 그쳤다. 이번에도 다수 글로벌 기관이 수요예측에 참여하지 않으면서 지난해 말 비상계엄 사태 이후 국내 공모 기업을 대상으로 얼어붙어 있는 해외 투심을 다시 한번 확인시켰다.
향후 상장 추진을 앞두고 있던 기업들에도 큰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IB 업계에 따르면 현재 SK엔무브·한화에너지·무신사·케이뱅크 등이 IPO를 위한 준비 작업에 돌입해 있는데 국내 시장 환경이 녹록지 않은 만큼 추진 시기를 예정보다 미룰 수 있다. 시가총액 1조 원 이상 기업 중 올해 증시에 입성해 공모가보다 주가가 높은 곳은 서울보증보험이 유일하다. 서울보증보험은 과거 3만 9500∼5만 1800원이었던 희망 밴드를 2만 6000~3만 1800원까지 낮추고 배당률을 대폭 높여 투심을 잡았다.
이날 수요예측을 마감한 롯데글로벌로지스의 상장 불확실성도 커졌다. 롯데글로벌로지스의 주요 주주인 롯데지주·호텔롯데는 공모가 밴드 하단 기준을 적용할 경우 약 2931억 원을 풋옵션 계약을 맺은 FI에 물어줘야 한다. 공모가가 밴드 미만으로 형성되면 보전해야 하는 차액이 커지는 구조다. 롯데그룹 측은 설령 하단일지라도 밴드 내 공모가를 정하면 상장을 완주한다는 방침이지만 공모 시장 전체가 위축된 만큼 이후 일반청약 흥행 등이 어려워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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